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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역사의 당신만 몰랐던 숨겨진 뒷이야기

by 유익한 정보를 매일 알려주는 방구석 혁명가 2022. 11. 24.

2022년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는 아랍에미리트 연방 7개 토후국 가운데 하나로 면적만 448km2입니다. 수도는 도하이며 인구는 298만명 가량 됩니다.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술 반입이 금지돼 있으며 입국할 때도 주류반입 여부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카타르 역사에 대해 아래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카타르 역사

카타르-역사

카타르는 10세기경 다양한 아라비아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18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서쪽과 북쪽 끝에 살던 할리파(알 할리파)가 카타르 북서쪽의 아주 바라로 이주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페르시아인들이 1783년 카타르를 침공했습니다.

그들과 싸우고 페르시아인들을 그 지역에서 몰아낸 후 할리파는 바레인 섬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그들은 결국 바레인 독립 국가를 세우고 아주바라 주변 지역을 바레인의 영토로 선언했습니다. 이후 바레인인과 카타르의 명목 인구 간의 불화가 심화되면서 1867년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바레인은 아부다비의 도후의 도움으로 카타르를 향해 진격했고 도하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듬해 카타르의 정치적 불안정과 잦은 해적 행위를 우려한 영국은 카타르 통치 가문의 후손인 무함마드 이븐 타니 알타니를 수장으로 임명했고 무함마드는 자신과 이웃 간 분쟁 해결에 관한 모든 사항을 영국 청장에게 맡기기로 합의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명목상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의 종주국으로서 1871년부터 카타르에 군대를 주둔시키려 했지만 이 시도는 무력 충돌로 이어졌을 뿐이었고 1893년에는 도후 군대에 패배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페르시아 만에 대한 투르크의 영향력은 사라졌고 1916년 11월 카타르가 트루아 국가(현재 아랍에미리트)를 기반으로 영국의 보호국이 되는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동시에 수세기 동안 심각한 문제였던 해적 행위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이 시기에 카타르의 경제는 거의 전적으로 진주 채취, 어업, 낙타 사육에 기반을 두었지만 1940년 석유의 발견과 2차 세계대전의 종식으로 빠르게 현대화되었습니다.

카타르는 1971년 영국이 페르시아만에서 철수했을 때 인접한 바레인과 함께 아랍에미리트(UAE)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지만 구성 직후 독립을 결정했습니다. 카타르는 1971년 9월에 독립 주권 국가가 되었고 유엔과 아랍 연맹에 가입했습니다.

독립 당시 왕은 셰이크 아흐마드 빈 알리 알타니였지만 1972년 셰이크 칼리파 빈 하마드 빈 압둘라 빈 자심 빈 모하메드 알타니가 정권을 잡고 새 왕이 됐습니다.

칼리파 왕은 지배층의 특권을 제한했고 헌법 개정을 통해 정부 구조를 개편했으며 많은 외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1995년 6월 그의 아들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는 그의 아버지가 스위스에 있는 동안 무혈 쿠데타로 왕이 되었습니다.

하마드 국왕은 1998년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정부구조를 개편하고 종교적 제약을 없앤 뒤 2013년 6월 아들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등 카타르의 정치·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카타르는 2006년 아시안게임과 2022년 월드컵 등 국제행사를 하마드 국왕과 타밈 국왕을 넘어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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